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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자
혈색 없는 고층 건물이 흐린 하늘을 긁는다. 희승은 여지껏 50개의 창문개수를 세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였다. 고가도로를 막 지났다. 버스와 몸이 함께 꿀렁여서, 무덤의 곡선을 타고 내려왔다고 느꼈다. 좀전까지 까마득하던 낮은 지대의 건물들이 이제 눈높이가 맞는다. 높낮이 없이 모두가 평면이 된 도로 위에서 희승은 50이란 숫자를 나누어보았다. 1 X...
자꾸 까무룩 잠에 든다. 눈을 뜨니 방안이 온통 석양의 오렌지빛이었다. 끔벅끔벅 눈을 움직였다. 똑똑. 똑똑. 똑똑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 안계세요? 문을 열었다. 두 뼘 아래 살집이 두툼한 경비원이 서 있었다.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양팔에 한아름 담긴 우편물을 건넸다. 경비원은 모자를 벗고 손등으로 땀을 훔쳤다. 가르마가 웃긴 모양으로...
바람이 차졌다. 바람에 날린 낙엽들이 유령처럼 도로를 휘저었다. 종성은 편의점 카운터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익숙한 느낌. 뒷목에서 무언가 쭈뼛 솟는 느낌. 이내 딸랑 하고 대학생처럼 보이는 남자가 들어오고, 시계는 정확히 밤 12시를 가리키고 있다. 주저없이 걸어가 집고 내려놓는 것은 복숭아맛 젤리. 눈꺼풀이 피곤해보였다. 턱이 까슬했다.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