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듣는 부탁이었다. 친구에게 내 책 중 한 권을 선물하고 싶다고, 그런데 이제 이곳에는 없다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 내 글을 함께 나누어 읽곤 했단다. 그때 그의 이름이 떠오른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일면식 없는 이의 소식을 듣고 며칠째 이름을 만지작거린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요즘 뼈저리게 느끼는 생각. 다들 어떻게 해나가고 어떻게 하고 있었던 거지. 이제 시작이지만 정말 힘들었고, 힘들다. 이러면 안 되는데 타인은 내게 관심은 없고 흥미만 있다는 말이 자꾸만 떠오른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할지도 모르겠다. 내게 안부라도 물어주는 사람들이 한없이 고마운 요즘.
당장 며칠 전에 기어이 그를 생각하며 글을 남겼었으니까. 손님 덕에 책을 추천받은 손님이 승관씨였고, 첫 장에 써드릴 이름을 들으며 건네받을 사람이 빈씨라는 걸 알았다. 며칠째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던 이름. 다섯 권의 책 중 네 권에 서서 사인을 하고 남은 한 권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털어놓고 기댈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다행인 일이지만, 이따금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누구에게도 그런 감정을 건네주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나만 힘든 게 아닐 텐데, 어리광처럼 느껴지진 않을까 하고. 그럴 땐 다들 어떻게 하는 걸까. 혼자서 감당해내야 할 때는. 흘려보내야 할 때는.
세상의 끝은 사람의 바닥을 마주하게 한다.읽으며 무뎌진 윤리와 날선 이기심에 잠겨죽을 것 같다가도, 그 안에서 사랑과 다정으로 나아가는 인물들을 짚어읽으며 숨을 틔우곤 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끝에서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을 수 있기를.